Review (Special Issu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Mineral and Energy Resources Engineers. 31 October 2022. 428-440
https://doi.org/10.32390/ksmer.2022.59.5.428

ABSTRACT


MAIN

  • 서 론

  • 대한민국 건국과 전후 복구기(1945~1960년)

  •   광복과 미국 군정기의 광업정책

  •   대한민국 건국과 전후 복구기의 광업정책

  • 경제개발기(1960~1987년)

  •   국제 자원시장 안정기(1960~1972년)

  •   수출 중심의 금속자원 개발정책 추진

  •   탄좌 형태의 집합형 석탄개발정책 추진

  •   내수 산업용 비금속광 개발 확대

  •   1,2차 석유위기와 자원민족주의 확산기 (1973~1987년)

  •   에너지자원 전담 정부부처 설립

  •   석탄 중심 정책전환과 석탄산업의 성장

  •   금속정제련 설비투자 확대 정책 및 금속광업의 성장

  •   비금속광 중심으로의 광업생산 구조의 전환

  •   자원안보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해외자원개발 체제 구축

  • 선진경제로의 전환기(1988~현재)

  •   국내 석탄산업 구조조정 및 합리화 정책 추진

  •   친환경 자원개발로 정책 전환

  •   해외자원개발 투자확대 정책 추진

  •   남북한 자원개발협력 정책의 추진

  • 과제와 전망

서 론

광물자원은 희소성, 고갈성이라는 재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어 일반적 시장재와 구별된다. 즉, 광물자원은 평상시에는 시장재적 속성을 갖고 시장 기능에 의해 수급이 조절되나, 비상시에는 전략물자로서 공공재적 중요성을 갖고 있어 정부는 안정적 자원 확보 정책 추진이 불가피 할 뿐 아니라, 국내 자원부존 평가 및 개발 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 또한 자원개발 시 발생되는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커 자원산업에 대한 효과적 관리와 규제 또한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정부도 정부 수립 초기부터 자원개발 및 관리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 추진하여 왔다. 광복과 이어서 발생한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복구 기간에는 국가재건에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한 재화로서의 자원개발정책을,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기와 선진경제로의 이행 시기에는 수출과 국내 연료자원으로서의 석탄증산, 중화학 공업 원료와 사회간접시설 건설용 원료 확보로서의 자원개발 정책을 비롯하여 광산재해와 환경피해의 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 추진하여 왔다.

본 논문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재까지 전개되어 온 자원개발 관련 주요 정책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자원개발산업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정책 과제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자원개발정책 전개 과정에 대한 시대적 구분은 우리나라의 국민경제의 구조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기간을 중심으로 ➀건국과 전후 복구기(1945~1960년), ➁ 경제개발기(1960~1987), ➂선진경제로의 전환기(1988~현재) 로 구분하여 각 시기별 경제·사회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자원개발정책 진행 과정과 이에 따른 자원개발산업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았으며,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자원개발 관련 정책 과제와 바람직한 정책 추진 방향을 정리해 보았다.

대한민국 건국과 전후 복구기(1945~1960년)

광복과 미국 군정기의 광업정책

1945년 광복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한반도는 위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이 남한은 미군이 진주해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였다. 남한의 통치를 담당했던 미국 군정청은 일본 철수 후 군정법 21호를 통해 일본 식민시대 때의 자원개발법령인 ‘광업령’과 ‘주요광물 증산령’을 기본 제도로 승계 유지하고, 일본이 관장했던 귀속광산의 개방을 전면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했으며, 군정법 22호를 통해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광산에 대해서는 민간의 개발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주요 광산 대부분은 귀속광산으로 개발이 진행되지 못했으며, 소규모 금광을 대상으로 일부 광산 개발이 진행되었으나, 1948년 북한으로 부터의 송전이 중단되며 이러한 소규모 광업활동도 대부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주요 귀속광산의 경우 미군정에서 광산 감독관을 임명하여 각 광산의 관리책임자를 통해 광산의 관리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군정은 텅스텐 자원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상동광산에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고 시설 보호와 함께 생산과 수송을 관리하였으며, 1947년 2월 미국으로의 첫 수출이 이루어졌다. 또한 미군정 당국은 남한의 광물자원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정리를 시도하였는데, 광물자원에 대한 분산된 자료에 대한 수집과 현장조사를 통해 ‘갤러거보고서(David Gallagher Report)’를 작성하기도 하였는데, 해당 보고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우리 정부에 이관되어 초기 국내 광업 정책 수립 시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KMIA, 2012).

대한민국 건국과 전후 복구기의 광업정책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부는 전 분야에 걸쳐 낙후된 경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49년 ‘경제자립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텅스텐, 흑연, 고령토 등 주요 수출 광종을 중심으로 큰 폭의 증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남은 산업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경제활동은 마비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국내 자원의 중심지였던 강원도지역의 치열했던 전화의 여파로 광산시설 및 수송로의 대부분이 훼손되는 피해가 발생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요 외화획득의 수단이었던 광물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자원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된다. 즉, 대한민국 국회는 전쟁 중이 었던 1951년 12월 23일 ‘광업법’을 제정하여 일제 이후 광업제도의 기반이 되었던 ‘조선광업령’을 대체하고, 우리나라 광업이 자주적으로 재출발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미군정의 자원관리 정책에 따라 귀속광산의 소유권 개방이 중단되며 종전 후에도 일본 식민지시기에 가동되던 광산의 90%가 국유화된 채로 남아있었는데, 정부는 광업 발전을 위해 소유권을 민간에게 불하하여 민간이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 보다 효과적인 정책이라 판단하고, 1956년 ‘국유광산 불하계획’을 수립하여 1958년 까지 14차에 걸쳐 입찰을 추진, 민간에게 광산을 불하하는 등 민간이 중심이 되는 자원개발 산업구조가 구축된다(KMIA, 2012).

한편 자원개발과 관련하여 투자자금의 마련은 사업 추진의 필수적 요소라 할 수 있는데, 미군정 기간의 사회적 혼란과 전쟁으로 모든 산업시설이 파괴된 상황에서 외국 원조자금은 현실적으로 유일한 자원개발 투자자금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2월 10일 정부는 미국과 경제원조협정을 체결하고 미국의 동맹세력의 유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미국 ‘경제협력법(ECA, Economic Cooperation Act)’에 의거한 ECA원조가 1949년 개시되었으며, 이를 통해 발전용 원료로서의 석탄 증산과 상동광산의 텅스텐 개발에 필요한 원조자금으로 1950년 314만 달러가 계상되었으나, 동 년 한국전쟁이 발발되며 자금 집행은 시행되지 못했다(KMIA, 2012).

이후 종전이 이루어지며,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 United Nations Korea Reconstruction Agency)의 원조를 통해 광산 및 인프라 복구가 진행된다. UNKRA의 경우 7000만 달러에 이르는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1953년부터 부흥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54년 이후 지하자원 개발에 필요한 자재도입, 시추조사, 제련소 보수 등이 진행되게 된다. 특히 UNKRA는 1953년 9월 14일 한국 정부와 ‘중소광업융자기금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중소 자원개발기업에 대해 원조를 실시하였고, 1954년 6월2일 ‘탄광개발협정’을 체결하고 ‘석탄증산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국내 석탄개발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증산을 실현하였다.1) 특히 석탄의 경우, 국유화된 귀속광산의 대부분을 민간에게 불하한 일반광과 달리, 발전용 원료로서 공공재적 요소를 갖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기업 중심의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즉, 1950년 석탄공사법을 공포한 후, 그해 11월 석탄공사를 발족시켜 석탄 생산의 80%를 공사 산하의 탄광이 담당하게 된다(KMIA, 2012).

한편 미국은 전략물자로서 국내에 풍부히 부존되어 텅스텐에 관심을 갖고 1952년 3월 ‘한미중석협정’을 체결하게 되는데, 본 협정에 따라 미국은 상동광산의 개발에 필요한 재정과 물자를 공급하고, 한국은 생산된 텅스텐 15,000톤을 mtu당 65달러로 독점 판매하게 된다. 이러한 파격적인 계약을 통해 텅스텐 광업은 한국 산업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며, 풍부한 자금 투입을 통한 적극적인 개발이 이어지며 계약물량을 3년 만에 공급 완료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2) 미국에 대한 배타적 공급 종료 이후 정부는 생산된 텅스텐의 전량을 매입하고 국제 입찰을 통해 수출을 도모하는 한편, ‘산금3개년계획’을 수립하여 국내 금 증산3)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화를 확보하는 정책도 추진하였다.

경제개발기(1960~1987년)

1960년대에 접어들며 전후복구가 1차적으로 종료되고,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1차산업 중심에서 2차 산업 중심으로의 전환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산업시설과 사회인프라 건설투자에 필요한 외화 획득 필요성과 다양한 원료자원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됨에 따라 국내 자원산업도 활발한 투자와 증산, 산업구조적 전환이 빠르게 진행된다. 정부는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이후 매 5년마다 차기 계획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추진, 1980년대 말,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국가로서의 전환을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사회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여 국내 자원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며 자원개발산업의 형태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진다. 전후 세계경제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1973년 까지는 금속자원 수출을 통한 외화획득, 건설용 원료자원 확보를 위한 비금속자원 생산확대, 전력/산업용 에너지원으로서 석탄증산 정책 등이 추진된다. 이후 1973년과 1979년 1, 2차 세계석유위기 발생과 자원민족주의가 확산되며 자원안보의 실현이 중요한 자원정책 방향으로 등장하여 해외자원개발을 위한 다양한 제도마련이 이루어진다. 본 기간의 주요 자원개발정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제 자원시장 안정기(1960~1972년)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자원개발산업은 국가의 주요 외화 획득원이자 산업발전을 위한 원료 공급 산업으로 국내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산업적 위상을 갖고 있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 내에서도 광업은 별도의 성장목표와 추진계획이 제시되었다. 본 기간의 광업정책 방향은 ➀ 석탄, 금속광, 비금속광 적극 개발, ➁저품위 광석의 부가가치 향상을 위한 중앙선광장 건설 ➂ 자원개발 기반조성을 위한 자원조사 및 연구의 추진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KMIA, 2012), 이러한 정책 추진결과 상당한 규모의 자원증산과 산업발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 기간 이후 광업부문은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에 따라 석탄광업의 침체, 금속자원 가격 하락에 따른 생산 위축 등으로 광산물 내수 비중이 수출 비중을 넘어서고, 기간산업 확충에 필요한 원료자원 수입 증가로 자원 수입이 수출을 넘어서는 구조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 중 자원정책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출 중심의 금속자원 개발정책 추진

1960년대 초 국내 광업상황은 당시 국영기업이었던 대한철광, 대한중석, 대한석탄공사, 한국광업제련공사를 제외한 민간광산들의 경우 투자자금 부족으로 원활한 광업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는 민간 광업활동의 지원을 위해 1962년 ‘광업개발조성법’을 공포하고 국영기업들을 통한 민간기업 지원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1961~1962년 기간 동안 전국의 지질학자를 총 동원하여 태백산지구에 대한 지하자원조사를 실시하여 해당지역의 금속광산 개발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작성하였으며, 1958년 미국과의 협정을 기반으로 중앙지질광물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주관으로 미국 잉여물자 중 광산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오던 KOMEP(Korean Office of Mineral Exploration Project)사업을 1962년부터 정부 예산 사업으로 변경하여 물자보급 및 탐광굴진을 보조토록 하였다.

이러한 금속광산 개발정책의 성과로 영풍기업의 연화광산의 본격 개발이 이루어져 납, 아연광 생산이 크게 증가하였으며,4) 텅스텐의 경우 대한중석이 달성에 가공공장을 설립해 원료광석에서 최종제품 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정광이 아닌 고부가 가공제품으로 수출품목 전환을 성취하게 된다.

탄좌 형태의 집합형 석탄개발정책 추진

1960년대 국내 산림은 일제의 임산자원 공출과 땔감 이용을 위한 산림 남벌, 한국전쟁 등으로 심각한 황폐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녹화촉진 임시조치법’ 등 산림훼손을 막고 녹화산업을 추진하였으나, 연료의 임산자원의존율이 1950년대 후반까지 70%를 초과하여 연료의 대체 없이는 훼손된 산림의 복원은 불가능했다(KMIA, 2012). 이에 정부는 발전, 산업, 교통 등 공공부문에 석탄을 우선 공급하고, 민수용으로도 석탄 공급을 확대한다는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1961년 국내 석탄의 효율적 개발과 안정적 증산을 목적으로 하는 ‘석탄개발임시조치법’을 제정 공포하게 된다. 본 법의 주요 내용은 소규모 탄광 개발로 인한 생산 혼란과 비효율성의 제거를 위해 연간 30만 톤 이상의 생산력을 갖춘 광구집합체를 ‘탄좌’로 설정하고, 대단위 투자를 유도하여 현대적 경영을 도모한다는 것으로, 대형 민영탄광이 본격적으로 설립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집합형 석탄개발을 추진을 위해 정부는 ‘석탄개발위원회’를 설치하고, 본 조직을 통해 탄좌의 설정, 개발계획의 수립, 광구조정 등 석탄산업 관련 제반사항을 심의결정하며, 석탄공사를 통해 민영탄광에 대한 개발 협조와 집합형 탄좌 조성 업무를 지원토록 조치하였다. 또한 투자자금의 지원을 위해 1962년 ‘광업개발조성법’을 제정하여 광업권을 담보로 개발자금의 융자와 시설투자 시 총 투자의 75%를 장기 저리로 정부가 융자하는 지원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석탄 수송을 위해 강원도 예미-정선 간 철도, 충남 남포선의 부설 등이 시행되었으며, 송배선 시설의 확충, 석탄 수송 도로의 개통 등 대단위 탄광개발에 필요한 사회인프라를 보강하였다. 이러한 지원정책 추진으로 석탄생산량은 1961년 590만 톤에서 1971년 1,128만 톤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탄좌 형태의 집합형 석탄개발 정책으로 석탄공사와 민영탄광의 구성 비율은 1962년 48:52에서 1971년 34:66으로 상대적으로 민영탄광의 활발한 증산이 성취되었다.

한편 1965년 대통령 특별지시로 정부(경제과학심의위원회)는 국가 에너지 수급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에너지 수급전망과 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본 계획을 통해 전력의 국유화, 석탄의 점진적 국유화와 석유의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대 원칙들이 마련된다. 이를 기초로 1966년 상공부는 종합에너지계획을 수립 발표하는데, 이때 소위 주유종탄(主油從炭) 즉, 석탄은 발전용 및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민수용으로 석유를 사용한다는 정책방향을 설정되며, 민수용으로서 석탄사용이 제한되어 1970년을 전후하여 석탄 증산의 제한과 석탄광업의 단기적 불황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내수 산업용 비금속광 개발 확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행에 따라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사회인프라 건설로 국내 시멘트 수요가 증가하며 시멘트 원료광물인 석회석, 규석 등의 수요 증가와 도자기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고령토, 장석 수요가 증가하며 비금속 광산의 투자와 생산 활동이 활성화 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 외화 획득원으로 인식되던 국내 광물자원이 내수산업을 뒷받침하는 원료로 역할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비금속광물의 경우 수출용과 내수용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흑연, 활석, 형석 등은 수출을 목적으로, 석회석, 고령토, 장석, 규사 규석 등은 내수를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먼저 내수용 비금속광물 생산을 살펴보면, 먼저 석회석은 시멘트 수요 증가로 1962년 125만 톤에서 1971년 10,616만 톤으로 10년간 약 85배 증가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다. 또한 정부의 수출산업으로의 도자기산업 육성정책 추진에 따라5) 시설확충과 해외 기술도입이 이루어지며 원료광물인 고령토 납석, 규석, 장석 등의 경우도 활발한 증산이 이루어졌다.

한편 수출용으로 개발된 형석, 활석, 흑연 등의 경우도 꾸준한 증산이 이루어져 수출 물량 증가가 지속되며 1967년 수출비중이 70%를 상회하였으나, 비금속광물의 내수가 점차 증가하며 1970년대 접어들며 수출비중은 점차 하락하게 되었다.6)

1,2차 석유위기와 자원민족주의 확산기 (1973~1987년)

본 시기는 제2차 경제개발기본계획의 성공적 시행으로 산업화의 기틀이 마련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개편이 추진되고, 1973년과 1979년 1, 2차 세계석유위기와 자원민족주의 확산으로 인해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한 자원안보의 중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기간이다.

정부는 3, 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81)을 통해 농어촌경제의 혁신적 개발, 수출의 획기적 증대 및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 개발과 추진이 이루어진다. 특히 정유, 석유화학, 제철, 비철금속, 시멘트 산업 등 자원 다소비형 중화학공업 정책이 추진되며 자원개발산업과 자원수급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전 세계적 석유위기로 거의 모든 자원의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 악화는 물론 자원확보의 불확실성이 제고되며, 우리나라의 에너지 및 자원 정책 전반에 대한 재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본 시기에 걸쳐 전개된 자원개발 정책의 변화와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에너지자원 전담 정부부처 설립

1973년 제2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1차 석유위기는 자원안보에 대한 정부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1970년대 초 까지 자원은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일반적 재화로 인식되었으며, 원유수입의 경우도 미국 걸프(Gulf)사가 대행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걸프전 발발과 함께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 등 친 이스라엘 서방국 들에 대해 원유 수출을 중단하자 우리나라도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는 물론, 물량 확보 자체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석유파동이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청와대 경제수석을 중동국가에 급파하여 원유확보를 위한 자원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에너지 및 자원정책에 대한 대대적 개편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1977년 12월 정부조직법을 개편하고, 과거 상공부에서 동력·지하자원·열관리 부분을 분리하고 1978년 1월 동력자원부를 신설하여 관련 정책 기능을 혁신적으로 강화하게 된다. 동력자원부 기구는 상공부외에도 과학기술처의 자원조사관실, 공업진흥청의 열관리과, 가스과 등이 흡수 통합된 구조로, 자원개발국, 전력국, 석유국, 석탄국으로 구성되었으며, 광업등록사무소와 지역별 광산보안사무소 등이 외부조직으로 포함되었다.

석탄 중심 정책전환과 석탄산업의 성장

1973년 1차 석유위기에 따른 대응으로 정부는 장기에너지공급대책을 수립하게 되는데, 주요 정책적 골자는 ①석탄 등 국내에너지자원의 생산 및 활용 극대화, ② 유류 소비억제, ③ 원자력발전소 건립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KMIA 2012). 또한 1974년 1월에는 ‘석탄자원개발과 안정공급계획’을 수립하여 석탄증산을 위해 생산 및 증산량에 비례하는 보조금 지급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국민생활안정 긴급조치 3호를 발령하는데, 국민 연료문제 해결을 위해 연탄의 가격 및 수급안정의 중요성을 명시하며, 기존의 에너지정책의 골간이었던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을 ‘주탄종유(主炭從油)’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적 근간 아래 1974년 3월 석탄 증산분에 대한 보조금 2배 인상, 시설투자비 및 운송비 지원 등 공급 확대를 위한 전방위적 정책 지원과 가구당 1회 구매 시 20장 이상 연탄 제한판매 등 수요관리 정책까지도 시행하게 된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되자 탄광에 대한 법인세, 소득세, 영업세 면제, 시설 감가상각 기간 단축 등 파격적 조세감면 특혜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지원정책 시행으로 석탄생산은 1973년 13,571천 톤에서 1975년 17,593천 톤으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1975년 겨울 이상난동으로 연탄수요 감소로 재고가 누적되는 등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되었는데, 이에 정부는 석탄수급의 근본적 안정 도모를 목적으로 1975년 3월 ‘석탄 수급조정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공포한다. 법률의 주요 골자는 석탄 수급 불균형 발생 시 생산량 조절, 판매수량 조절, 품질 등급 구분 및 관리 기준 적용 및 에너지 파동에 대비한 저탄자금 200억 원의 조성 등이며, 본 법은 2차 석유위기 영향이 안정화 되는 1986년 12월 까지 시행되게 된다.

한편 1979년 제2차 석유위기가 시작되며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안정세를 유지하던 국내 석탄 수요는 또 다시 급증하게 된다. 무연탄의 증산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정부는 1978년 6월 무연탄 수입을 개시하게 되는데, 민수용은 석탄공사가, 발전용은 한국전력이, 비축용은 조달청이 각각 수입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다 1984년부터 석탄공사로 일원화 된다.

석탄증산정책의 일환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탄광기계화사업의 추진이다. 우라나라의 경우 급격한 지질변동으로 굴곡 및 경사가 심하고 탄폭도 변동이 많아 인력 위주의 채탄이 불가피하여 생산효율이 낮고 심부화로 인한 대형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 탄광기계화는 심부탄층을 안전하게 개발하여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75년 채탄기계화를 위한 타당성 조사가 착수되고, 이를 토대로 정부는 1979년 탄광기계화 계획의 수립과 함께, 1980년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한국동력자원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채탄기계화사업단이 설치되 신채탄법의 개발, 장비 규격 제정, 장비 국산화 연구 등을 수행하고, 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는 광산동력시스템의 현대화 연구, 굴진, 운반, 유압장비의 기술지도, 국고보조금사업의 집행 등을 담당하였다.

이상과 같은 정책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석탄생산은 1973년 13,571천 톤에서 1988년 24,295천 톤까지 증가하는 성과를 실현하였으나, 이후 민수용 석탄 수요의 감소와 광량고갈, 작업환경 악화 등으로 인해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석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합리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금속정제련 설비투자 확대 정책 및 금속광업의 성장

1970년대 이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른 중화학공업 정책 추진으로 우리나라 금속 정제련산업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1970년 경북 석포에 최초로 연산 900톤 규모의 아연제련소가 설립된 이후 1974년 2만1,000톤 규모로 증설되고, 1978년 온산지역에 연산 아연 5만 톤 규모의 고려아연 제련설비가 준공되며 국제적 규모의 납·아연의 제련설비를 보유하게 된다.7) 또한 ‘한국광업제련공사’가 운영하던 장항동제련소를 1971년 ‘한국광업제련주식회사’로 민영화한 후 1970년대 중반 5만 톤 까지 생산용량을 증설하게 된다. 이후 1979년 온산동제련소(주) 설립과 함께 1982년 럭키그룹(현 LG그룹)에 편입되며 대규모의 동 제련설비를 갖추게 된다.8) 한편 1973년 년산 100만 톤 규모의 포항제철의 준공, 1987년 광양제철소의 준공 등이 이어지며 우리나라는 세계적 규모의 철과 비철금속 제련설비를 보유하게 된다. 국내 보유 주요 희유금속인 텅스텐의 경우 대한중석이 1972년 APT(암모늄파라텅스텐) 가공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텅스텐파우더, 초경합금 등 일괄제품을 생산하는 종합가공공장을 1980년대 까지 단계적으로 건립하는 등 우리나라 금속정제련 및 가공산업은 비약적 도약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금속 생산능력의 성장으로 생산된 광석의 대부분을 수출하던 국내 금속광산의 경우 증산과 함께 내수 판매를 확대하게 되고, 광석의 수입 또한 급증하였다. 먼저 아연광의 경우 1971년 제2연화광산 개발 이후 본격적 증산이 이루어지며,9) 텅스텐광의 경우 1972년 3,659톤에서 1981년 4,939톤으로 안정적 증산이 이루어진다. 철광석의 경우 포항제철의 준공과 함께 국내 충주철산, 포천광산 등의 철광산의 재가동으로 철광석 생산량이 1972년 49만 톤에서 1977년 79만 톤까지 증산되나 이후 광량 고갈로 생산량은 감소하는 추세로 전환 된다.

비금속광 중심으로의 광업생산 구조의 전환

1970년대 이후 국내 제조업 성장이 이루어지며 비금속 원료에 대한 내수가 증가하며 대부분의 비금속광의 생산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특히 건설수요 증가에 따른 시멘트설비 증설에 따라 1970년대 초 1,000만 톤 내외였던 석회석 생산량이 1990년 약 5,000만 톤 규모로 증가하며, 도자기산업이 10대 전략수출산업으로 선정되며 고령토 생산이 1970년대 초 20만 톤 수준에서 1990년 150만 톤 내외까지, 장석의 경우 1970년대 초 15,000톤 규모에서 140,000톤 규모로 증가된다. 내화벽돌 원료인 납석의 경우도 제철산업의 성장에 따라 1970년대 초 15만 톤에서 1990년 70만 톤 까지 생산이 증가하는 등 대부분의 비금속광물의 생산이 급증하며 국내 광업에서의 비중이 비금속광이 금속광을 크게 초과하여 광업의 주류로 등장하였다.

자원안보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해외자원개발 체제 구축

1978년 ‘해외자원개발촉진법(현 해외자원개발사업법)’을 제정하여, 석유를 비롯한 전략자원 확보에 필요한 해외투자 촉진을 위한 융자, 세제 지원 및 기반조성 지원 수단을 제도화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한 기금제도를 마련하는 등 전방위적 지원 정책을 강구하게 된다. 또한 1976년 자원개발 및 관련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자원개발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를, 1979년 석유개발 관련 기금 조성, 운영과 기술지원 등을 전담하는 석유개발공사(현 한국석유공사)를 설립하는 등 유관 공공기관의 설립이 이어졌다. 이렇듯 해외자원개발 및 확보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까지 자본, 기술 및 사업운영 노하우의 부족 등으로 해외자원개발 투자에 대한 의미 있는 성과는 얻지 못하였다.

선진경제로의 전환기(1988~현재)

1988년은 우리나라 사회에 있어 정치·경제적으로 상징적인 전환점을 이룬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가 있었으며, 민주화운동의 결과 직선제로 대통령 선출방식이 전환되고 선진화된 민주국가로의 체제변화가 있었다. 또한 냉전시대의 종식과 북방외교의 성과로 소련, 중국 등 구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가 개선되며 국제관계에서의 위상 또한 제고되었으며, 1인당 GDP 또한 5,000달러 전후로 성장하여 중진국으로의 국가 위상 변화 등 선진경제로의 진입을 위한 본격적인 경제·사회적 도약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라 자원산업도 구조적 변화가 시작된다. 먼저 올림픽 개최에 따라 청정연료인 천연가스 보급 확대와 아파트로 주거환경이 변화하며 중앙난방 중심으로 민수용 연료시스템 전환으로 석탄 수요가 축소되며 석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이 대두된다. 또한 중화학공업의 본격적인 성장에 따른 원유 정제시설의 확장과, 포항제철, 고려아연, LG금속(현 LS니꼬) 등 재련설비의 증설이 이루어지며 원료자원의 확보를 위한 해외자원개발 투자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지속가능개발’이 자원개발에 있어 전 세계적 정책 어젠더로 등장하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NGO의 역할과 영향력이 강화되며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조화가 자원개발사업 추진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따른 국내 자원개발 관련 주요 정책과 그 영향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내 석탄산업 구조조정 및 합리화 정책 추진

1980년대 중반 이후 국제 유가가 안정되고 청정에너지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석탄 소비량은 1986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게 된다. 특히 천연가스의 보급 확대는 민수용 석탄 수요 감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는 1981년 액화천연가스(LNG) 보급계획을 확정하고 1986년부터 LNG의 보급이 본격화한다. 이에 따라 석탄 연소 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온실가스 방출, 대기오염 등의 규제를 위해 직할시 이상 대도시의 학교, 병원, 관공서, 숙박업소 등과 아파트에서 연탄 사용을 금지하고, 1989년 연탄사용 가구의 가스보일러 설치 지원사업이 시행된다.

정부는 천연가스 보급확대 정책에 맞추어 석탄광에 대한 폐광대책 수립에 착수하게 되는데, 1981년 석탄광 구조개편 방안을 마련하는 특별기구로서 ‘석탄광지원사업단‘ 설치와 폐광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폐광정리기금’을 조성하였다. 또한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법률적 개편도 이루어지는데 기존 ‘석탄개발입시조치법’, ‘석탄광업 육성에 대한 임시조치법’, ‘석탄수급에 관한 임시조치법’ 등 3개 법안을 ‘석탄산업법’으로 통합 공포하였다. 본 법에 따르면 ‘석탄산업의 지원체계를 일원화해 석탄산업에 대한 보다 효율적 지원’이 법 제정 목적으로 되어 있으나, 주요 내용은 향후 본격적으로 시행될 석탄광의 폐광 및 정리 등 석탄산업 합리화 방법 등으로 구성되었다. 본 법의 시행에 따라 1987년 4월 ‘석탄합리화사업단’이 설립되었으며 1988년부터 본격적인 석탄산업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된다. 구조조정 방법은 매년 폐광대상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고시한 후, 폐광 신청을 받고 대상 광산에 광업시설 이전 및 폐기비용을 지원함과 아울러 근로자에 대한 실직위로금, 생활안정금 등의 특별 지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비경제적 탄광의 정리가 단계별로 신속히 진행되어 1988년 347개에 이르던 탄광이 1995년 11개로 축소되었다. 1차적으로 중소탄광의 폐광이 마무리 되자 정부는 대형탄광에 대한 일시적 폐광에 따라 발생 가능한 에너지 수급 충격과 지역경제의 부정적 부작용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1995년 ‘탄광지역 경제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하게 된다. 주요 내용은 11개 대형탄광의 경우 2000년 까지 폐광을 중단하고, 무연탄 소비 촉진을 위한 무연탄 전용 발전소 건립, 적정 비축량 유지 등으로 구성되었다.10)

또한 1995년 ‘폐광지역개발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폐광지역을 권역으로 묶어 대규모 고원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환경영향, 녹지훼손 등의 규제 적용 완화와 재정 지원 등을 실시할 수 있게 하였는데, 그 결과 2003년 4월 강원랜드 호텔, 카지노 등이 개장되고, 수익금의 일부를 페광지역 개발기금으로 조성, 본 기금과 수익금을 통해 문경 레저타운, 삼척 블랙밸리, 영월 동강시스타, 보령 대천리조트가 설립되었다(MOTIE, 2021).

친환경 자원개발로 정책 전환

광산개발 시에는 가행기간 중은 물론이고 휴폐광 후에도 산림훼손, 폐석유실, 폐수유출, 지반침하 등의 광해가 발생되어 국민 보건위생의 위해, 자연경관 훼손, 환경오염 및 대형 안전사고의 원인이 된다. 특히 1990년대를 전후하여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공동의 규제 장치 마련을 위한 전 세계적 움직임이 확산되며,11) 우리나라도 환경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확대되었고, 광해의 규제와 관리를 위한 정책적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으며, 광업정책의 근간도 자원 개발과 환경관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지속가능개발정책(Sustainable Development Policy)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산지관리법에서의 녹지도 8등급지 이상 지역에 대한 광산개발규제, 환경영향평가 및 사전환경성 평가 대상 광산의 확대, 백두대간법 공포에 따른 대상지역 내 광산개발 시 갱내채굴로의 제한, NGO단체의 범정부 위원회 활동 확대 등에 따른 영향력 강화 등으로 채광계획 인가 규제, 광산관련 지역 민원 증가로 인한 보상비용의 확대 등 광업활동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이렇듯 2000년대 이후 적극적인 광해 대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법령 체제로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에 한계가 있었다. 즉, 기존 광산보안법은 기본적으로 가행중인 광산의 안전관리를 다루는 법령으로서 효과적으로 광해방지사업을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환경 관련 법령(자연환경보전법, 폐기물관리법, 토양환경보전법, 수질환경보전법, 대기환경보전법, 소음·진동규제법 등)은 광산이 가행 중에 발생하는 환경오염물질 배출시설의 신고, 관리 및 부가금 부과 등 의무만 규정하고 있어 폐광 후 발생되는 광해방지를 위한 규정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전담법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05년 5월 광해관리 전담 법규인 ‘광산피해의 방지 및 복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본 법에 따라 광산보안법· 환경보전법 및 산지관리법 등 각 정부 부처로 산재되어 있던 광해방지 관리가 산업자원부로 일원화 되고, 산업자원부가 광해방지기본계획 및 실시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인 광해방지사업을 실시토록 하였다. 또한 폐광 후 광해방지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원인자(광업권자 또는 조광권자)가 가행 중에 광해방지사업금을 사전 납입하는 한편, 광해방지사업을 전담하여 추진할 수 있는 광해방지사업단(현 한국광해광업공단)을 설립토록 함으로써 광해관리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제고토록 하였다.

해외자원개발 투자확대 정책 추진

1978년 ‘해외자원개발촉진법’ 제정을 통해 해외자원개발사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으나, 1990년대 까지 해외자원개발 투자는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12) 그 이유는 우라나라의 경우 해외자원개발산업의 자생적 성장을 이루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생산을 통한 수익 창출 시기까지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고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요한 자본집약적산업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부존자원의 제약성으로 광업이 산업적으로 성숙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어13)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투자 자본을 자원개발기업 스스로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국내 광업의 영세성으로 인해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기술력의 확보는 물론 사업관리 능력 또한 갖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0년대 후반기 이후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제 자원시장이 안정화 되자 정부와 기업의 해외자원개발 투자 의지가 퇴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해외자원개발 투자기업들이 부채비율 축소를 통한 재무적 안정성 확대를 위해 기존 해외자원개발 투자자산 매각이 확대되며 해외자원개발 투자는 더욱 위축되었다.14) 이에 정부는 해외자원개발투자 마인드를 제고하고, 투자 확대를 위한 정책적 드라이브를 목적으로 2001년 ‘제1차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을 수립 공포하게 된다.15)

1차 기본계획에서의 주요 이슈는 해외자원개발의 구체적 목표, 정부지원 방향과 재정확보 방법, 자원개발사업 추진 주체의 역량 제고 방법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목표 설정과 관련하여 1978년 해외자원개발 전담 법제 제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해외자원개발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이유로 추진 결과에 대한 계량화된 구체적 목표가 부재하여 추진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없어 낮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따르지 못했다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산업적 중요성이 높아 해외자원개발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8개의 전략광종16)을 선정하고, 이들 광종에 대해 ‘자주개발율’17)이라는 구체적 성과목표를 10년 단위로 설정하였다. 둘째, 해외자원개발 투자 관련 재정지원 관련 정책 방향은 에너지자원개발특별회계에서의 자원개발부문 예산 규모를 2001년 1,734억 원에서 2003년 3,000억 원대로 확대하며, 정부의 직접적 재정지원은 투자위험이 높은 탐사단계 사업에 집중하고, 투자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개발·생산단계 사업은 정부의 채무보증을 통한 레버리지를 활용토록 하였다. 또한 공기업의 자원개발 핵심역량 강화를 위해 공기업 예산의 3%를 기술개발 분야로 투입, 자체 기술역량과 장비 개선 등을 추진하도록 계획을 제시하였다18)(MOTIE, 2001). 하지만 이러한 계획 수립에도 불구하고 IMF 외환위기로 인한 기업들의 보수적 경영정책으로 해외자원개발 투자는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제2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이 수립된 2004년에는 국제 자원시장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되었던 시기이다. 세계 경제 활황과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가 유지되고, 석탄, 철광석 등 거의 모든 원자재의 급격한 가격 상승은 물론 물량 확보에도 어려움이 발생되었는데, 이에 정부는 해외자원개발 역량과 성과를 혁신적으로 개선한다는 의지를 갖고 보다 적극적인 정책 개발을 목표로 다음과 같이 2차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첫째, 본 계획에 따라 해외자원개발 성과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 거버넌스의 구조적 개편이 이루어진다. 먼저 해외자원개발 논의의 중심을 기존의 통상산업부 장관에서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구성하여 자원확보를 위한 국가 총력체제를 구축하고, 자원확보 전담 정부조직 확충을 위해 당시 ‘통상산업부’ 내에 에너지전담차관 조직을 신설하여 ‘산업자원부’로 부처 명칭과 기능의 구조적 개편이 시행 된다.19) 둘째, 해외자원개발 투자 재원의 확충이 이루어진다. 에특회계 중 자원개발 예산을 총액의 20% 까지 확대하고, 수출입은행이 해외자원개발 융자사업을 확대하여 개발·생산단계 사업에 대한 융자지원을 실시하며,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현 광해광업공단)등에 대해 에특회계 융자를 출자로 전환하는 등 공기업의 투자 재원의 구조개편을 실시하게 된다. 셋째, 자원공기업의 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의 육성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먼저 석유공사의 경우 6조원의 추가 재원 투입을 통해 2008년 까지 23만 배럴/일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50위권의 석유기업으로 육성할 것, 그리고 광물자원공사의 경우 자본금 확충을 통해 해외 광산개발 직접투자로 광물분야 해외자원개발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등을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시행하는 등 혁신적 정책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2차 기본계획이 이행되며 2000년대 중반 많은 해외자원개발 투자 성과들이 창출되는데, 예멘 4광구사업, 리비아 엘리펀트 사업, 미얀마 A1 사업, 2004년 동해-1 가스전 개발성공, 2006년 베트남11-2사업 개발성공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2006년 자원개발펀드 도입, 에특회계 중 자원개발예산의 대폭적 확충,20) 수출입은행의 자원개발 예산 확충21) 등 금융인프라의 혁신적 개선 또한 이행된다.

2007년 수립된 제3차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2007~016)은 자원개발투자 주체로서 자원개발기업 육성 및 민간기업 지원 기반조성에 주요 정책 방향이 맞추어졌다. 먼저 공기업의 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의 육성이 주요 정책방향으로 제시되는데, 석유공사의 경우 50만 배럴/일 생산규모를 갖춘 글로벌 자원개발 기업으로의 육성을, 광물공사의 경우 2020년 자산규모 6조원의 글로벌 20위권의 광업메이저로 육성 등을 목표로 인력, 기술, 자본금 등의 확충을 계획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과 공급을 위해 ‘자원개발특성화대학’과 ‘자원개발전문대학원’ 설립 등을 추진하고 ‘해외자원개발협회’ 설립을 통해 기업 지원사업 들의 이행을 추진토록 하였다.

2010년에는 제4차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2010~2019)이 수립되는데, 이 시기는 2008년 발생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4년 이후 지속되던 자원가격 상승세가 꺽이고 국제 자원가격이 안정세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정책 강화로 청와대, 총리실, 외교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 모두가 자원외교를 확대하는 ‘전방위 자원외교’가 시행되고,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사업(2009), 영국 다나사업(2011), 미국 이글포드사업(2011), 가스공사의 GLNG사업(2010), 광물공사의 볼레오사업(2012) 등 자원공기업들이 사업별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M&A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와 함께 국내 자원개발서비스산업의 부재로 인한 자원산업 생태계 조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원서비스기업의 육성을 위한 지원정책들이 시행되었다.22)

2001년 1차 기본계획 수립 이후 4차 기본계획까지 약 10년간의 해외자원개발 육성 지원정책의 추진으로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외형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창출하게 된다. 먼저 해외자원개발사업 투자액의 경우 연간 최고 투자액을 보였던 2011년 105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기본계획이 시작되었던 2001년 3.9억 달러와 비교하면 약 27배에 이르는 비약적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전략광종의 자주개발율 또한 빠르게 증가하게 되는데, 2012년 기준 자주개발율이 석유 8%, 천연가스 31.5%, 유연탄 57.7%에 이르게 되며, 광물자원인 니켈 31.9%, 아연 19.9%, 철 14.5%, 동 11.5% 등 전 전략광종들 모두에서 의미 있는 자주개발 성과를 성취하게 되었다(Table 1).

Table 1.

Self Sufficiency Ratio from Overseas Mineral Development Investment

Minerals Crude Oil Natural Gas Coal Uranium Copper Ore Iron Ore Zink Ore Nickel
Ratio (1999) 1.7% - 23.1% - 9.8% - 1.0% -
Ratio (2012) 8.0% 31.5% 57.7% 8.1% 11.5% 14.5% 19.9% 31.9%

Source) Ministry of Trade Industry and Energy, 2001,. The 1st National Plan for Overseas Resources Development, p.5.

Ministry of Trade Industry and Energy, 2014,. The 4th National Plan for Overseas Resources Development, p.14-15.

하지만 2011년 4월 114달러/배럴(WTI기준)을 정점으로 2015년 하반기 30달러/배럴까지 유가가 하락하고, 석탄 등 광물자원가격 또한 2011년 이후 하락세가 진행되자 해외자원개발 투자 회수액 하락이 수반되며23) 공기업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부실투자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된다.24) 특히 해외자원개발 투자정책을 강력히 드라이브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고 새 정부가 체제가 들어서며 자원개발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정치 쟁점화 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해외자원개발 부실투자에 대한 국정조사(2014년)’, ‘해외자원개발 감사원 특별감사(2015년)’ 등이 시행되었다. 특히 자원개발공기업들의 대규모 손실로 인한 재무구조 부실화로25)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해외자원개발혁신TF가 구성되어 자원개발공기업들의26) 해외자원사업 점검 및 사업타당성 재평가를 통해 향후 자산관리 방향을 제시하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혁신TF에서는 자원개발공기업들의 사업관리 및 해외자원개발정책 추진방향을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먼저, 사업투자와 관련하여 투자대상광구의 매장량에 대한 합리적 평가 기준의 마련, 기존 투자사업에 대한 주기적 재평가와 부진 사업에 대한 유연한 정리 프로세스의 확립과 함께, 이사회의 투명성과 이사진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제도 마련 등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에너지 안보, 경제충격 완화, 산업육성 측면에서 해외자원개발은 여전히 중요한 국가 정책적 과제임을 인식하고, 공기업 대형화 등 외형 확대가 아닌 국가 전체적인 해외자원개발 역량 강화와 자생적 산업 생태계 조성을 정책 목표로 하여, 선택과 집중에 입각한 투자대상 사업의 우선순위 설정, 탐사-개발-생산 단계 사업의 적정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공기업과 민간기업간의 동반성장 체제를 구축하는 추진 구조를 지향하고,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한반도 자원개발 협력 및 4차 산업 및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광물 확보 등 미래를 대비한 정책추진을 권고하였다.

남북한 자원개발협력 정책의 추진

북한은 남한과 비교하여 지하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마그네사이트, 중석, 몰리브덴, 흑연, 중정석, 금, 운모, 형석 등 8종의 매장량은 세계 10위권 이내이며, 상업적 개발가능 광종이 2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Statistic Korea, 2022).27) 이러한 북한의 풍부한 자원 부존 잠재력으로 남북한 간의 공동 자원개발은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있어 최우선적 협력 대상 분야로 거론되어 왔다.

남한과 북한이 북한 자원의 공동개발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을 같이 한 것은 동서냉전이 와해되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가 본격화되는 시기로서, 1992년 9월에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이다. 이때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게 되는데, 합의서 제1장 제1조에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 내부 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고, “남과 북은 물자교류와 석탄, 광물, 수산자원 등 자원의 공동개발과 공업, 농업, 건설, 금융, 관광 등 각 분야에서의 경제협력사업을 실시할” 것을 명시하게 된다.

이후 2000년 12월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게 되는데, 이때 “천연자원의 탐사, 채취 또는 개발을 위한 허가를 비롯하여 법령이나 계약에 따라 부여되는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사업권” 을 보장 대상 자산으로 명기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서 2003년 7월 광업진흥공사가(현 한국광해광업공단) 황해도지역의 정촌 흑연광산 개발을 위해 북한과 자원개발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가행 단계에 까지 진입, 총 3회에 거쳐 생산물 반입을 통한 투자 상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후 2005년7월 남북은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위원회 제10차 회의 합의서에서 “남측은 북측에 긴요한 의복류, 신발, 비누 등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각각의 원자재를 북측에 제공하며, 북측은 아연, 마그네사이트, 인회석, 석탄 등 지하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남측에 보장하고 생산물을 제공”할 것에 합의하게 된다. 이후 2006년 6월, 지하자원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개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 경공업 원자재 유상 지원에 따라 지하자원 생산물, 그리고 지하자원 개발권, 생산물 처분권 또는 기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대가 상환에 합의하게 된다. 이러한 합의의 후속조치로 북한은 남한에 단천지역 자원개발 권리를 제공하게 되며, 단천 연·아연·마그네사이트 광산 개발을 위해 광물공사, 지질자원연구원 및 관련전문가들이 단천 현장을 방문하여 2008년 ‘단천지역 3개 광산 사업타당성 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피격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조치28) 등에 따라 남북간의 자원개발협력사업은 모두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후 2016년 북한의 3, 4차 핵실험, 2017년 5차 핵실험 및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한산 자원 수입과 대북 원유 수출 및 투자를 금지하는 UN대북제재가 시행되며 남북한간의 자원협력은 물론 자원교역 또한 전면 중단에 이르게 된다.

과제와 전망

자원개발과 관련된 향후 과제와 정책 방향들을 국내 자원개발, 해외자원개발, 광해방지 및 남북자원협력 등 네 가지 분야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내 자원개발에 있어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와 추진 정책으로 첫째, 신규 광량확보와 개발 활성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신규 확보된 광량의 대부분은 비금속광으로29) 신규 금속광량 확보가 미흡하였으며(KIGAM, 2021), 비금속광의 경우도 고품위광의 광량 확보가 미흡했다. 따라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광해광업공단 등 공공기관 중심으로 꾸준한 자원조사와 광량 확보를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추가 광량 확보 시 민간 이양을 통한 개발 유도는 물론 개발, 생산, 선광, 가공, 소재화 등 유관기술의 개발과 기술 이전 등을 통한 적극적인 생산 확대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둘째, 심부화 및 환경규제 강화 등 개발조건이 어려워지는 자원개발 여건 변화에 대응하는 스마트마이닝 등 무인화, 자동화 기술개발과 현장 적용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작업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셋째, ESG(Environment, Social & Governance)경영 등 친환경 자원개발과 관련한 교육과 산업적 적용이 필요하다. 최근 수년간 ESG경영은 광업을 비롯한 전 산업분야에 걸쳐 중요한 산업 트랜드로 등장하였다. ESG경영의 적용 없이는 기업가치의 하락은 물론 외부 투자 자본 유치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회계적 지표 적용 의무화 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으로 환경친화적 자원개발이나 지역사회와의 협력 없이는 자원개발사업의 추진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대형 석회석 광산 및 정제련기업 들을 제외하고는 기업 스스로 ESG경영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시행하고 있는 기존의 광산안전교육 외에 중소광산 들에 대한 자원개발 관련 ESG 교육 강화와 함께, 기업 규모에 맞는 ESG 지표 개발 등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외자원개발과 관련하여서 다음과 같은 정책추진이 필요하다. 현재 해외자원개발 산업의 경우 투자 주체 및 산업생태계 모두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다.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부실화와 정치적 쟁점화와 함께 2020년 초 까지 지속된 자원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2007년 전후 년 간 100건이 넘었던 해외자원개발 신규 투자사업 수는 2021년 기준 총 4건으로 축소되어 사실상 신규투자가 중단 된 상태이며, 해외자원 투자 기업 수 또한 정점을 보였던 2010년 전후와 비교하면 절반 이상 감소한 상황이다. 또한 미래의 자원안보를 선행하여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는 해외자원 확보매장량도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어,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미 취약해진 해외자원개발 산업생태계가 와해될 것이며, 향후 빈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정학적 위기와 자원 공급 리스크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 능력은 더욱 취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 주체로서의 정부, 투자 주체로서의 기업, 금융-정보-기술 등 투자지원 기관 등의 3 가지 주체 모두의 체계적 대응이 필요한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추진을 향한 전향적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해외자원개발 관련 정책 주체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자원개발 전담부서의 명칭을 2019년 <자원개발전략과>에서 <자원안보정책과>로 변경하였다. 이는 해외자원개발이 자원안보를 실현하는 중심이 아니라, 자원안보를 실현하는 다양한 정책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 및 포지션 전환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2020년 발표한 <제6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서도, 기존 20년간 지속하던 해외자원개발 관련 성과지표인 <전략광종>과 <자주(자원)개발율>30)이라는 지표를 폐기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자원개발을 전담하는 전문 부서의 복원과 함께, 해외자원개발 성과를 대표할 수 있는 목표 지표의 제시를 통해 해외자원개발 투자 확대를 향한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의지 회복과 투자 활성화 대책 추진이 필요하다. 먼저 공기업의 경우 과거 우리나라의 자원개발투자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정도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현 한국 광해광업공단) 두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부실투자 문제와 2020년 까지 이어진 국제적 자원가격 하락으로 인해, 자본잠식이라는 재무적 위험에 직면하여 과거와 같은 투자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세계적 코로나팬더믹 확산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경쟁 확대 등 지정학적 위기가 가져온 비정상적이고 위급한 국내외 경제상황과 공급자 시장으로 급변한 국제자원시장 환경 변화를 고려하면, 재무적 위험에 빠진 국내 공기업의 기업회생과 투자기능 복원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는,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셋째, 민간기업의 투자활성화 유도이다. 자원개발공기업의 재무적 어려움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수년간 민간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주체로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자원개발에 대한 정치적 쟁점화가 종식되고,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포함하여 철광석, 알루미늄, 동 등 기초금속, 니켈, 리튬, 희토류광물 등 자원 전반의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자원개발투자 사업성이 제고되며, 민간기업들의 경우 해외자원개발투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담해주는 정책 시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즉, 해외자원개발 관련 특별융자사업에서, 융자 지원비율의 상향조정, 실패 시 감면비율 확대를 통한 탐사사업 리스크의 분담이 가장 먼저 고려될 지원정책 중의 하나라고 보이며, 전문인력에 대한 공급을 위한 자원개발 특성화대학 3단계 프로그램의 차질 없는 이행, 공공부문을 통한 자원개발 프로젝트의 정보·기술평가 지원 등 기반 조성 사업 추진도 필요하다.

광해방지와 관련하여서는 첫째, 광해방지기술의 고도화와 함께 권역별 광해통합처리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오염정화·복원, 광산폐기물의 재활용, 조사·계측·모니터링 등 분야별 광해처리기술 고도화를 위한 지속적인 정책추진과 함께 개발광산 중심의 기존의 복구사업 추진 체제를 수계, 행정구역 등 권역별로 발생되는 복합 광해를 통합 관리하는 복구체제를 구축하여 광해처리 및 복구의 효율성 제고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산림복구 및 탄소저감형 광해방지시설31) 확대 등으로 탄소배출 저감 시 탄소상쇄 인증 및 인증량 판매 등 탄소상쇄사업 추진 등도 탄소중립정책에 대응하는 중요한 정책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MOTIE, 2022).

마지막으로 남북한 자원협력사업의 확대 추진이 필요하다. 비록 현재 상황에서는 남북한 간의 자원협력 재개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그 간 진행되었던 남북한 간의 자원협력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남북한 모두 자원개발협력과 관련하여 높은 사업적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남북한 간의 협력 초기부터 자원공동개발은 당국 간 주요 협력 어젠더가 되어왔으며, 국내 공기업 및 다수의 민간기업 들도 북한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관심 및 투자를 검토하였고, 북한의 경우도 자원공동개발투자사업을 남북 경협의 중심사업으로 인정하고, 사업시행을 위해 협의를 진행하였다. 둘째, 자원교역 및 투자사업 확대가 북한에 자본주의적 거래 관행 습득에 제한적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과거 남한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재화를 지원하는 기존의 경제협력 형태와 달리 광물자원공사가 투자한 정촌 흑연광산의 경우 생산물 반입 이 3차례에 걸쳐 실현된 점이나, 단천 광산개발과 관련하여 남측의 경공업 제품 지원에 대한 보상으로 2007년 240만 달러에 이르는 아연괴 현물 상환이 있었던 점은 북한이 자본주의적 거래관행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인지하고 실행하는 출발점이라 볼 수 있으며, 북한 측도 남북간 자원협력사업의 확대 발전을 희망하고 이를 이행하려는 성의와 실천을 보였다는 점에서 향후 자원협력 확대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증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 자원협력사업의 경우 정치-사회적 환경변화에 종속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바,32) 향후 안정적인 자원협력 확대를 위해서는 정치적 환경 변화에 독립적인 투자사업의 구조화와, 외부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사업 형태 마련이 자원협력사업 실현의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어 남북 간 정치 환경 변화에 독립적인 투자사업의 구조화가 향후 사업추진에 있어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것이다.

Acknowledgements

본 연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업통상자원부(MOTIE, KIAT) 지원 사업(GP2020-005, P0018011)으로 수행되었습니다.

References

1
Korea Institute of Geoscience & Mineral Resources (KIGAM), 2021, Mineral Commodity Supply & Demand 2020-2021, DaeJeon, Korea, 12p.
2
Korea Mining Industry Association (KMIA), 2012, Mining history of Korea for 100 years, Seoul, Korea, 76p, 84p, 95p, p.107-108, 136p.
3
Ministry of Trade Industry & Energy (MOTIE), 2001, The 1st National Plan for Overseas Resources Development, Kyongki-do, Korea 5p.
4
Ministry of Trade Industry & Energy (MOTIE), 2014, The 4th National Plan for Overseas Resources Development, Kyongki-do, Korea p.4-15.
5
Ministry of Trade Industry & Energy (MOTIE), 2021, White Papers of Korea Ministry of Trade Industry & Energy 2019-2020, Sejong, Korea. 77p.
6
Ministry of Trade Industry & Energy (MOTIE), 2022, The 4th National Plan for Mine pollution control & rehabilitation, Sejong, Korea, 7p.
7
Statistics Korea, 2022, Major Statistical Indicators of North Korea 2020, Daejeon, Korea, 87p.

각주

[3] 1) 국내 무연탄 생산은 1951년 239,518톤에서 1954년 890,969톤으로 증가

[4] 2) 텅스텐 생산은 1951년 381톤에서 1953년 7,441톤으로 증가한 후, 미국 매입계약이 중단된 1954년 3,828톤으로 감소

[5] 3) 금 생산은 1951년 237kg 에서 1954년 1,484kg으로 증가

[6] 4) 납 생산은 1962년 2.825톤에서 1971년 33,086톤으로, 아연광의 경우 1962년 839톤에서 1971년 56,322톤으로 급증하였음

[7] 5) 정부는 1968년 도자기산업을 수출특화산업으로 지정하고, 요업센터를 설치

[8] 6) 형석의 경우 총생산량 대비 수출비중 94.3%, 흑연 76.8%, 활석 75.8%였으나, 1971년 50% 이하로 하락

[9] 7) 고려아연의 경우 현재 단일공장 기준 세계 1위의 생산규모임

[10] 8) 2021년 기준 연간 51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 3위의 생산규모임

[11] 9) 아연생산량은 1972년 71,850톤에서 최고 생산을 기록한 1977년 136,710톤 까지 증산된 후 국내 광량 고갈로 점진적인 감산이 이루어짐

[12] 10)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폐광이 진행, 2020년 말 기준 현재 4개 탄광이 가행중이며 1,019천 톤 생산

[13] 11)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UNCED의 리우지구회의(Rio Earth Summit), 1997년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to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등이다.

[14] 12) 제1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 따르면 1998년 석유 자주개발율은 1.7%로 자원안보적 측면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성취하지 못했음

[15] 13) 1990년대 국내 광업의 GDP 점유율에 약 0.2%내외에 불과

[16] 14)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은 1997년 8억 달러에서 2002년 5억 달러로 감소하며, 1998년부터 2002년 까지 총 26개의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철수 됨

[17] 15) 해외자원개발사업법 제4조에 정부는 10년 단위로 3년 마다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종합적인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명시되어 있음. 이후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매 5년마다 10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변경

[18] 16) 전략광종 선정기준은 ①광석상태로 이용, 처리시설이 있는 광종, ② 수입 규모가 1억$ 이상(4차 기본계획 : 5억$ 이상), ③ 수급 불안 시 국내 산업에 미치는 중요도 등로,1차기본계획에서의 전략광종은석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철, 동, 아연, 희토류광물임

[19] 17) 자주개발율=투자광구생산량 x 국내기업 지분율/국내수입량

[20] 18) 이상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채무보증제도의 경우 금융기관들의 소극적 대응으로 실현되지 못했음.

[21] 19) 2005년 7월 에너지전담 차관제도가 시행되고, 2006년 11월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설립됨

[22] 20) 2007년 자원개발 예산 규모가 9,213억 원에 이르게 됨

[23] 21) 수출입은행의 자원개발 예산규모가 연간 4,500억 원 규모로 증액

[24] 22) 서비스기업 육성정책으로는 서비스기업의 R&D지원, 국내서비스기업과의 동반진출시 에너지자원 융자 에산 우선지원 등의 정책 등이 시행되었음

[25] 23) 석유가스의 누적 투자회수율은 2005년 97.6%로 최고치를 보이다가, 2011년 이후 50%이하로 하락하였으며, 6대 전략광물자원의 경우도 2007년 78.8%에서 2013년 40% 이하로 하락하였음

[26] 24) 2008년부터 2017년 기간 중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은 총 37.9조원, 동 기간 손실액은 15.6조원에 이르렀음

[27] 25) 광물자원공사는 2016년 완전자본잠식, 석유공사의 경우 2017년 부채비율이 700%에 이른 후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2021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감

[28] 26) 대상 공기업은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가스공사 3대 자원공기업으로 구성

[29] 27) 북한 광물자원 매장량 집계는 한국광해광물공단 추정 자료임. 북한의 광물자원 매장량 추정치의 경우 매장량 집계 대상 기준 품위가 낮고, 개발조건 등을 반영하지 않고 부존량의 전량을 생산 가능한 것으로 집계하는 등 시장경제체제와 다른 집계 기준을 갖고 있어 추계된 매장량에 있어 불확실성이 존재

[30] 28) 이 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같은 해 5월 24일 정부가 내놓은 대북 제재조치. 개성공단과 금강산 제외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인도적 지원까지 모든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주요 조치 사항임

[31] 29) 추가 광량확보로 비금속광 자급율은 2009년 68%에서 2020년 74%로 증가

[32] 30) 제5차 기본계획에서는 "[자주] 라는 명칭 때문에 국내 도입되는 자원량으로 오해를 초래"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주개발율> 이라는 명칭을 <자원개발율>로 변경

[33] 31) 석탄공사 함백탄광과 신성탄광 수질정화 시설에 필요한 전력을 태양광 및 소수력 발전 시스템을 도입해 공급 시행 중

[34] 32) 광물자원 교역의 경우 남북관계와 신뢰회복이 본격화 되는 2005년을 기점으로 규모 확대되었으며, 자원개발 투자의 경우도 2000년대 초 정촌광산 개발투자로 시작, 2005년 이후부터 단천자원개발사업 등 대규모 투자사업 진행이 본격화 되다 5.24조치가 시행되는 2010년을 기점으로 자원교역 및 투자사업이 모두 중단되는 등 정치적 이벤트에 따라 사업이 영향을 받는 구조적 문제점을 보여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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